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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남 [Choe Che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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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회화 > 유화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
1934년 1월 12일
사망일
미상
출생지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정의
북한의 유화가이자 교육행정가로, 말년에는 송화미술원에서 활동했다.
내용
1951년까지 온성에서 중학교와 고급중학교를 다녔다. 1951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였다. 1952년 모스크바방직대학 장식미술학부에서 5년간 미술 수업을 받았다. 모스크바에서 머물던 시기, 크림반도에서 50여 점의 유화로 개인전람회를 개최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30년간 평양미술대학에서 교수, 교무부학장, 과학부학장을 지내면서 전문가들을 양성했다. 1957년 평양미술대학 재직 시 창작한 대표적 작품은 유화 <얼굴>(1957), <원쑤를 잊지말라>(1958), <아들>(1961) 등이다. 이후 계급교양주제로 유화 <신천 400어머니(1~2)>(1964)를 창작했다. 최제남의 <원쑤를 잊지말라>는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하였다. 계급교양주제의 심각한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분위기를 어둡게 사용하고, 유화의 강한 터치로 필요한 부분만 부각시켰다. 대담한 생략과 강조를 통하여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중앙미술창작사 활동 시기에는 유화 <폭포>(1990), <가을>(1991), <소백수의 아침>(1992) 등과 같이 주로 풍경화를 그렸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교육행정사업과 국가학위학직심의사업, 대외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이 시기에 3차례에 걸쳐 ‘ 사회주의국가 수공예전람회’ 국제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예술과 발전에 관한 국제 토론회, ‘독일미술가동맹 제9차대회’의 초청대표단으로 10차에 걸쳐 대외 활동을 진행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새로 조직된 중앙미술창작사의 사장으로 활동하였다. 최제남은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집행위원으로 문예총 중앙위원회 위원, 그리고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미술부문 국가심의위원으로 있었다. 1995년 이후 원로화가들로 구성된 송화미술원 회원으로서 ‘송화미술전람회’에 유화 <백두산>, <이른봄>, <비오는 봄날>등 17점의 작품을 발표했다. 1998년 3월 조각가 곽태영과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관련어
평양미술대학
,
국가미술전람회
,
중앙미술창작사
,
송화미술원
관련연구(남)
정윤경, 「조선적 인상주의 거장 최제남」, 『통일한국』, 제283호, 2007.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역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