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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음악학원 [Haeju Conservatory of Music]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음악 > 공통 > 공통
9분류 조직
집필자 노동은
시기1946년 1월
정의
음악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3년제 전문학교이다.
규모와 구성
3년제 해주음악전문학교는 북한 최초의 음악전문학교로 성악과, 기악과, 작곡과 등의 전공자가 1948년까지 백여 명에 이르는 규모였다. 교수진은 정률성, 한시형, 김순남, 박영근 등으로 알려졌다.
내용
해주음악전문학교는 1946년 1월 정률성(鄭律成)에 의해 설립된 음악전문학교이다. 『해방후 조선음악』(1956)에선 그 재학생 수가 1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규모는 1947년 9월 1일에 창설한 평양음악전문학교 150여명의 전공자수와 비교된다. 같은 해(1947년 9월) 해주음악전문학교는 미술 무용 등의 전공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해주예술전문학교로 발전한 것으로 보이지만, 김순남 등의 기록에는 이 기간에도 계속 해주음악전문학교 체제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3년제 평양음악전문학교는 성악과와 기악과를 비롯하여 미술과가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교수진은 분명치 않지만, 평양과 해주 두 전문학교의 교수진, 곧 문하연·김완우·강효순·리광엽·김재섭·남원우·림은옥·박광우·원흥룡·리근강·김태섭 등과 리면상·박영근까지 밝히고 있다. 1946년 교수였던 정률성은 학교 설립 직전인 1945년 12월에 황해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배치받아 활동하고 있었다. 이어서 1947년 봄 평양으로 전근되어 조선인민군구락부(현 조선인민군협주단) 부장에 임명되어 단장으로 활동 하였으며, 1949년 3월 해주와 평양의 두 전문학교가 내각결정으로 5년제 국립음악학교로 설립되자 작곡부장을 맡았다. 김순남은 1948년 7월에 월북하여 이곳 해주음악전문학교에서 교수활동을 하였으며, 1949년 국립음악학교 설립 당시 작곡과 교원이면서 국립예술극장 등에서 작품발표를 하다가 10월에 사절단으로 1차 소련을 방문하였다. 해주음악전문학교는 북한 최초의 음악인재들을 양성하는 전문학교로서 현재의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의 모태가 되었다. 또,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분단 이전에 남북을 잇는 통로로서 통일적인 음악교육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관련어 해주예술전문학교, 김원균평양음악대학,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동의어 해주음악전문학교
관련자료(북) 문종상, 「국립음악대학연혁(1949~1955)」, 『해방후 조선음악』, 평양: 조선작곡가 동맹중앙위원회,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