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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희 [Chang Manhui]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선전화
9분류 인물
집필자 홍지석
출생일1917년 11월 23일
사망일1993년 4월 13일
출생지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
정의
경공업미술창작사 소속으로 산업미술, 도안, 선전화 분야에서 활동한 북한의 미술가이다.
내용
장만희는 경공업창작사 소속으로 산업미술, 도안, 선전화 분야에서 활동했다. 1917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고 1936년 일본에 건너가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 염직과에서 수학했다. 졸업 후 요네야마 스튜디오에 입사하여 산업선전화를 제작했다. 1955년에는 제너럴 아트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소니전기회사의 반도체 라디오 광고 등을 디자인했다.
1960년에 북한으로 가 경공업미술창작사 미술가로 활동했다. <평양관광선전화>(1962), <조선예술단 대외공연 선전화>(1965), <포도술, 사과단물 상표>(1966), <담배포장도안-평양, 만수, 풍년>(1968)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작품활동 외에 조선미술가동맹 기관지 『조선미술』에 「전시장의 배치구성과 색채」(1965년 12호), 「포장도안에서의 색채원리」(1966년 8호), 「도안의 원리」(1967년 5호) 등을 발표한 이론가, 비평가로서의 활동도 주목된다.
북한 평론가 리재현은 장만희가 “창작사업으로 제기되는 제품도안, 상표도안 과제들을 맡아 수행하며” 북한 산업미술도안의 현대성 구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평한다. 리재현이 보기에 장만희의 도안은 “문화성과 실용성이 잘 보장된” 사례이다.
장만희는 조양규, 리인두, 한우영, 표세종 등과 더불어 1960년대 초 북한으로 귀국한 재일조선인 미술가 중 하나다. 이들 재일조선인 미술가들 대부분이 북한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진 반면, 장만희는 북한체제에 비교적 잘 적응한 경우이다. 이것은 리재현이 서술한 대로 당시의 북한미술에서 “산업미술은 시작에 불과하였고 경험있는 창작가가 몇 명밖에 되지 않았던” 사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관련어 산업미술, 도안, 경공업미술창작사
관련연구(남) 홍지석, 「1960년대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의 북한 귀국 양상과 의미-조양규의 사례를 중심으로-」, 『통일인문학』, 제58집, 2014.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증보판)』,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장만희, 「포장도안에서의 색채원리」, 『조선미술』, 8호, 1966.
장만희, 「도안의 원리」, 『조선미술』, 5호, 1967.

이미지

장만희

이미지명 : 장만희